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갈수록 상징과 은유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박쥐'에 이르러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는 바람에 영화를 보면서 머리가 좀 복잡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줘서 나름 행복하기도 하지만, 뇌리에 부유하는 수 많은 생각들, 단어들, 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갈증을 느끼는 바람에 약간은 탈진의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상현(송강호)과 태주(김옥빈)는 고아(孤兒)고 강우(신하균)는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라여사(김해숙)는 자식에 대한 끔찍한 사랑 혹은 소유욕이 있지만 술에 찌든 알콜중독자며, 승대(송영창)은 퇴직한 꼰대 형사고, 영두(오달수)와 이블린(메르세데스 카브랄)은 국제결혼한 부부다. 상현의 부모와 같은 노신부(박인환)은 장님인데다 걷지도 못한다. 이 외에도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정상'인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껍데기를 살짝만 걷어내고 그들의 캐릭터를 조금만 과장하면 영화 속 인물들보다 더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영화 속 캐릭터들을 반사적으로 현실에 투영하려고 버둥대는 내가 보였다.
상현과 태주가 가장 갈증(Thirst)을 느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건 단지 그들이 뱀파이어가 되어서가 아니다. 뱀파이어가 되더라도 '톰 크루즈'나 '브래드 피트'와 같은 뱀파이어도 있고 '웨슬리 스나입스'나 '게리 올드만'과 같은 뱀파이어도 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배우들이 각각의 특징있는 뱀파이어로 분해 뭇 여성들 혹은 남성들의 목덜미를 물며 빨간 선혈(鮮血)을 섭취해 왔었다. 그런데 상현과 태주는 그들보다 더 갈증을 느꼈고 그들과 비교해 더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영화 전편에서 상현과 태주가 섭취한 피의 양은 여태 소개되었던 뱀파이어 영화 속에서 섭취한 피의 양을 훌쩍 넘어서는 듯 하다. 게다가 너무나 맛있게 '쪽쪽' 빨아대며 먹는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갈증나게 만들었을까. 게다가 그들이 피를 빠는 모습은 흡사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의 젖을 빠는 것처럼 보인다. 그 행위는 그 자체로 순결하고 고귀할 뿐이다.
왜 신부였던 상현이 뱀파이어가 되었을까. 상현은 왜 태주를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게 해놓고 죽게 만들었을까. 강우의 정신분열(처럼 위장한 듯한 느낌)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노신부는 평생을 수도사의 길을 걷고도 단지 눈을 뜨고 일출을, 석양을 보고 싶어 뱀파이어가 되려고 했던 것일까. 승대는 태주를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을까. 영두와 태주의 섹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끝까지 살아남은 라여사는 왜 반신불수가 되어 상현과 태주의 죽음을 지켜봐야 하나. 너무나 많은 상징이 보여 힘겹다고 투덜 댈 즈음 오히려 내 자신이 상징을 덧붙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다만, 오히려 쉬울 수도 있겠다 싶다. '갈증'과 '구원', '넘치는 갈증'과 '비틀린 구원'
상현의 고뇌가 가장 극에 다달았을 때 병원 앞에서 텐트를 치고 상현의 은총을 기다리던 호각처녀(황우슬혜)를 강간하려 했던 건 이해가 되더라. 그들을 죽여줄까...라고 생각하던 내 예측을 깨고 가볍게 '강간' 포즈 한 번으로 그들이 상현에게 걸었던 모든 기대와 소망들을 한 줌의 잿더미로 만드는 것이란... 그러니 보여줄 거 다 보여줬어야 했을 거다. 대단했다. 근데 태주가 첫 경험이었던 상현은 어쩌면 그렇게 '섹스'가 가진 긍정의 힘과 부정적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등장했던 배우들의 캐릭터가 모두가 강해 힘들이 서로 충돌되는 게 느껴질 정도로 팽팽했다...고 기억한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는 감독 스스로가 만든 틀을 최대한 드러내도록 하면서 그 안에 캐릭터들을 가두고 캐릭터들이 그 틀에 압사당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도록 만드는 것...같다.
반면에 봉준호 감독은 그 누구못지 않게 틀을 견고하게 짜고 있지만 최대한 일상(日常) 속에 감추어 두고 캐릭터들의 잠재의식을 건드려 튀어나오게 한 후 자신의 틀에 맞추도록 하는 것....같다.
'박쥐'도 재밌게 봤지만 그래서 '마더'도 기대하고 있다.
영화의 촬영이나 편집이 꽤 좋다고 기억된다. 음악도. 배경과 미술은 '친절한 금자씨'에서 화려함의 정점을 찍었다면 '박쥐'부터는 '간결함'의 정점으로 향하고 있는 듯 하다. 사운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조명이 좀 독특하다고 느껴졌는데 잘 모르겠다.

박찬욱의 승리? 혹은 김옥빈의 투쟁?
'김옥빈의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귀엽고 섹시하고 퇴폐적이고 광년이 같고 무섭고 지랄맞고 보호본능 자극하는... 특히 피를 묻히고 눈동자 초점을 살짝 놓은 후 예쁘게 웃으며 이쁜 척 할 때 가장 예쁘게 보였다.
'송강호의 정체'라고 할 만 하다. 한 거 또하고 본 거 또 보고. 나아진 건 o|o(불사파)를 과감히 '드러냈다'는 것.
신하균은 그런 반 미친상태의 연기를 너무 잘한다. 그가 가진 눈빛이 그렇고 마스크가 그렇다.
김해숙, 박인환, 송영창, 오달수는 딱 그들의 장점을 잘 표현했다.
황우슬혜가 송강호의 바지가랑이를 잡을 때 순간 '미스 홍당무'에서 러시아어로 '라이터'를 부르짖던 얼굴이 오버랩되어서 혼자 웃었다.
처음에 나오던 간호사 최희진. 마스크가 너무 깨끗하던데... 박찬욱 감독이 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카메라에 아주 잘 잡혀있더라. '박쥐' 속 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옛날 사진으로 대체.
** 추가
많은 사람들이 쓴 글에는 상현이 500명 중에 살아 돌아 온 사람이라고 적는데 내 기억에는 노신부가 '50명 중에 살아 돌아 온 사람'이라고 말을 한 후 병원 밖에서 기다리면 환자들과 라여사가 '500명 중에 살아 돌아 온 사람'이라고 말을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떤 상황은 부풀려지게 마련이고 그 부풀려진 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희망과 기대가 부풀려지고 왜곡되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노신부가 한 이야기를 잘못들었던 것일까...
[mov. or ani.] - 박쥐(Thirst) 초간단 줄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