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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2 행복한 자유인 서호(西湖) (1)
  2. 2010/05/09 행복한 자유인 중국 애니메이션 일대종사 터웨이(特伟) (0)
  3. 2010/04/23 행복한 자유인 외로움 (1)
  4. 2010/04/22 행복한 자유인 벌써 두 달이 지났다. (3)
  5. 2010/02/24 행복한 자유인 희망을 품으며 희망을 경계한다. (7)
  6. 2010/02/22 행복한 자유인 호수 (6)
  7. 2010/02/20 행복한 자유인 새해엔 달콤하시라고 증지위가 권합니다. (0)
  8. 2010/02/13 행복한 자유인 명절 (6)
  9. 2010/02/13 행복한 자유인 중국의 경품추첨의 규모는? (2)
  10. 2010/02/13 행복한 자유인 서점이 사라진 세상의 무식한 대학생 (1)

서호(西湖)

in a frame | 2010/05/12 23:50 | 행복한 자유인


2002년에 처음 가본 항주 서호(杭州西湖), 그 이후 2004-5년 즈음에 한 두 번 더 가봤을까. 다시 갔을 때는 서호를 제대로 본 기억도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2002년에 처음 본 안개 가득한, 비가 내려 촉촉히 젖은 운치있던 서호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리고 2010년 항주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갔다가 없는 시간 쪼개서 저녁에 잠깐 가 본 서호는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낮의 모습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밤의 서호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기 위해 휴식을 위해 몰려드는 관광명소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운치있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즐비한 명품점과 찻집, 커피숍, 술집들이 즐비했다.

이번에 본 서호 물론 아름다웠다. 도로 정비도 잘 되어있었고 씨티사이클 제도이나 조경 등 전체 설계가 참 괜찮았다. 다만, 내 기억 속의 서호와는 너무 큰 변화였기 때문에 그저 신음에 가까운 감탄만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평생 다시는 안개 자욱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호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아름다운 야경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운치있는 서호를 거닐던 모습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지금의 서호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연과 문명을 향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태그 : 서호,항주
  1. 2010/08/18 18:41 답글수정삭제

    여기, 참 멋지네. 스산한 느낌까지 나는 것이 참 운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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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에 개막했던 제6회 항주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第六届杭州动漫展:CICAF)에 다녀왔다. 이번에 준비하는 행사(제1회우한중한일대학생디지털아트비엔날레)를 홍보차 간 건데 한 번도 CICAF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 나름 기대가 됐다.

CICAF 첫 인상은 무척 규모가 크다. 정말 화려하게 준비했다라는 인상이 강했다. 특히 이번엔 특별초청인사로 아바타 아트디렉터 등과 쿵푸팬더 감독 등이 방문을 하는 등 '돈 많이 들였다'라는 느낌이 많았다. 그 외 초청인사들도 대부분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저명인사들인지라 이번 행사는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 였다. 그들과 관련된 행사는 입장료만 500원-1000원(인민폐)에 육박하는지라 가서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솔직히 별로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일단 겉으로 보고 들은 규모만으로는 정말 중국다운 스케일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행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느낀 감상은 그야말로 '실망'이었다. 보안 검색대는 사소한 물병하나도 지니지 못하도록 엄격한 듯 보였지만 간혹 행사장 근처에서 담배를 피거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고 경비를 맡은 이들의 보안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매표소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글을 적거나 명함을 집어넣은 곳조차 없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내외국인 전문가들은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행사장에는 지하, 1층, 2층으로 구분이 되어있었는데 만화, 애니메이션을 위한 페스티벌이라기 보다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가득한 장터가 된 느낌이 강했다. 앙시나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서울의 SICAF, 부천의 PISAF를 다녀본 나로서는 실망할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터웨이(特伟)' 감독에 대한 것이다. CICAF에서는 이번에 터웨이 감독 회고전을 준비했다. 터웨이 감독은 국제시사만화가로 시작했지만 후에 '피리부는 목동(牧笛)', '산수정(山水情)', '올챙이 엄마를 찾아(小蝌蚪找妈妈)', '오만한 장군(骄傲的将军)' 등 중국 애니메이션 초창기에 한국의 신동헌 감독, 일본의 데즈카 오사무 감독과 같이 중국 애니메이션의 부흥기를 주도했던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그가 만들어 낸 '수묵 애니메이션'은 현재 그 누구도 다시 재현할 없을 만큼 기술적, 예술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으로 당시 중국의 애니메이션 창작에 대한 열정과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초대 대표로 있었던 '상해미술영화제작소(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중국 애니메이션의 심장이라 불릴만큼 상징적이었고 당대에 만들어 냈던 수 많은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캐나다의 NFBC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상해미술영화제작소'는 여의주 잃은 용이 되었고 여의봉없는 손오공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위엄은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를 따랐던 수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부흥기를 이어갔지만 애석하게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그들의 모든 재능과 미래를 앗아갔고 중국의 애니메이션은 맥을 끊기고 말았다. 다시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려했을 때는 이미 중국의 대부분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하청업체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러다 다시 조금씩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희망을 일으키며 전국 곳곳에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들이 생겨났고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 CCTV 등이 앞장서서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외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위대했던 터웨이 감독은 작년에 9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를 계기로 CICAF에서 터웨이 회고전을 준비했는데 회고전 장소를 가보고는 질색을 하고 말았다. 지하 전시실 외진 구석에 별다른 영상물도 없이 사진과 작품 이미지만 잔뜩 붙여놓고 '중국 애니메이션 일대종사 터웨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문득 가슴이 아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감독이 자본과 정부의 '애니메이션 놀음 잔치'에 찬밥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CICAF는 항주시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다)

중국은 현재 전국 곳곳에서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애니메이션 육성기지를 건설하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그저 허장성세에 불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웨이 감독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산업을 육성한다는 게 오히려 괴이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신동헌 감독이 생각났다.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풍운아 홍길동'을 만들고 7개월 후에 다시 '호피와 차돌바위'를 만들었던 신동헌 감독. 애니메이션 회사들의 횡포에 견디지 못하고 애니메이션 계를 떠났던 위대한 애니메이션 감독. 일전에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신동헌 감독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가 만든 '풍운아 홍길동' 원본 필름을 찾으로 '데즈카 프로덕션'을 방문했던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초라한 노신사 신동헌이 방문했던 데즈카 프로덕션은 데즈카 오사무 감독의 작품들로 너무도 멋지게 장식이 되어있었고 그의 명맥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반면 신동헌 감독은 자신의 필름을 고국이 아닌 이국타향에서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과 중국의 모습은 다른가. 홍길동 기념사업회도 있고 홍길동 복원프로젝트도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신동헌 감독은 중국의 터웨이 감독의 모습과 겹쳐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정책, 산업, 교육 역시 중국의 그것과 겹쳐있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한 푸대접은 서글프기만 하다.

중국 항주에서 터웨이 감독의 초라한 회고전을 보며 터웨이 감독과 신동헌 감독을 위해 뭔가 조촐하게라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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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record my mind | 2010/04/23 00:19 | 행복한 자유인
아는 동생이 묻는다.

'오빠, 아직도 외로워요?'

'응? 언제 내가 외롭다고 했던가?'

'아니, 그렇게 보여요.'

'아... 음...'

사실 대화하는 내내 나도 내 표정이 좀 슬픈 듯 했는데
세심한 녀석은 기어이 묻고야 만다.

'사실, 다 외로운 것 아닌가?'

'..... 그런가요?'

뻔한 답변이지만 그 대답으론 녀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안다.
그렇다고 속을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데
내 눈은 상대방을 속이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에 머문 외로움은 쉽게 떨구어지지 않는다.

'언제 외로움을 느껴요?'

'그러게... 꼭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꼭 듣고 싶은 시선을 보낸다.
잠시 망설이다 이윽고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사실 어쩌면 조금은 녀석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방향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는 것 같아.
설령 결혼한 사이라 해도 닭살이 돋을 만큼 공명을 한다는 건 쉽지가 않잖아?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대가 세상에 존재할지 어떨지 모르겠어.
가령, 과거에 어떤 사람의 글을 읽고 흥분이 된다 하더라도 실제 그 사람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같이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의 환상과 이상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처럼.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엔 버겁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어떤 날,
가끔이긴 하지만 외롭다고 느껴져.'

'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함께 삶을 공유하게 되면 또다시 원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겪어보지 않은 일을 가지고 말을 하긴 뭐하지만...'

조금은 공감하는 표정을 짓던 녀석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볍게 하지만 의미있게 입을 열었다.

'...그 맘,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문득 녀석이 고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왈칵 외로움이 밀려왔다.
만약 술이라도 마셔서 취기가 오른 상태라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취기에 그 분에게 전화했던 때처럼 소리내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알 것 같다니, 내가 고맙다.'

어두워지만 창 밖과는 달리 녀석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난 계속 가슴 속을 누르는 상태가 되고 얼굴을 조금 발갛게 달아올랐다.

녀석이 고마웠고 내 자신이 힘겨워보였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과 고마움은 아주 가끔, 아무때나 찾아온다.
내일이면 표면 위로 증발해버릴 가벼운 무게 정도,
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맴돌며 내 호흡기를 드나들 외로움 따위.

나를 위로하던 녀석을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이다
다시 울컥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난.
태그 : 외로움
  1. 난데. 2010/08/18 18:49 답글수정삭제

    글 올린지가 4월이니... 이젠 좀 씩씩해졌니?
    어차피 평생 함께 가는 것이니 친구하면서 편하게 가자고 해도, 막상 옆에서 실체를 들어내면 힘들어지는게 그 놈의 '외로움'이니... 어렵다, 그치?

    바쁘게 사는 거, 엄마가 말씀하시길, 바쁘게 살면 못 느낀다고 했는데... ㅎㅎ
    몸이 힘들 정도로 피곤하고, 정신 없이 바쁘면, 가끔 인식이야 하지만, 그냥 또 그렇게 넘어가다가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기면 와락, 물컹하게 와 버리니... 어렵다, 어려워.

    그래도 늘~ 씩씩하게 지내기다. 튼튼하고 씩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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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달이 지났다.

daily life | 2010/04/22 23:33 | 행복한 자유인
-
우한에 온지도 이제 2달째 접어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는데 5-6년 전 정신없이 일했던 어느 해가 자주 겹쳐진다. 아직도 서툰 중국어로 강의하고 회의하고 소통하며 일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몇 번이고 중도에 그만두려고도 생각했지만 주변의 스승님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마음을 추스리며 버텨왔던 세월의 흔적들을 지금 조금씩 다시 풀어놓고 있는 듯 싶다.

-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누군가는 '너무 겸손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지금도 학생들 앞에 서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자신있음'보다 '자신없음'이 먼저 고개를 든다. 어쩌면 이런 긴장감이 나를 더 다잡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노력하지 않는 내가, 좀 더 공부하지 않는 내가 보일 때마다 부끄럽고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
스스로를 '잡부'라고 말할 만큼 이 판에서 안 해본 없지만 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만그만한 정도에 머무른 능력을 생각해보면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원리'를 아는 것 만큼 좋은 건 없다는 것.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인 같다. 20대 초반에 열심히 '수행'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같기도 하다. '원리'를 향해 달려가던 젊은 날,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주변이 조용해지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내 삶의 원리와 도리에 대해 화두를 품게 되는 건 고질병인 듯 싶다.

-
몇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넘겨내고 있다. 때론 즐겁고, 때론 뿌듯하며, 때론 힘겨운 날들을.

태그 : ,우한
  1. 깨미 2010/05/02 02:18 답글수정삭제

    보고싶은, 아우야!!

    늘 마음속에 함께하는데
    누나가 마음에 힘이 있어야 나의 기도가 멀리 우한까지 갈텐데..^^

    건강하자
    그리고, 늘 법신불 사은님 은혜와 위력이 함께하길 바랄께.

    언제 어디서나 여유있는 마음으로 은혜나누며 행복하게!!

    • 행복한 자유인 2010/05/02 02:20 수정삭제

      그럽시다. 언제나 여유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삽시다.

      대각의 달에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길.
      깨달음이, 대각이 늘 주변에 있음을 알고
      조금씩 알아가고 체득해가며 살아봅시다.

      늘 행복하시길...

  2. 나야 2010/08/18 18:20 답글수정삭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
    힘들어도 좀 지나고 나면, 그 자리가 너 자리인 듯 편안해 질거야.

    정신 없이 바쁜 여름을 보내다가, 오늘 하루 여유가 생겨서 올만에 너한테 들어와 봤다. 잘 지내지?

    9월 말에 한국 들어갔다가 10월 말에 다시 체코로 돌아올거야.

    거긴 날씨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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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품으며 희망을 경계한다.

record my mind | 2010/02/24 13:45 | 행복한 자유인

'희망'처럼 상투적인 단어도 없지만 '희망'이란 말처럼 꿈을 꾸게 하는 단어도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을 자주 말하는 걸 경계한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은 너무나 쉽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말을 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타인으로부터 취하려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희망이 같아지려면 꽤 오랜시간을 대화하고 소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희망을 품는다. 조심스럽게, 급하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너에게, 나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희망이 무엇인지, 품어도 되는 희망인지. 급하게 품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경박하게 품는 희망 역시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기다림이다. 흐르는 시간을 지켜봐야만 하고 그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변해가려는 의지가 전보다 확고해져야 한다.

 

지금 당장 불만이라고 해서 희망을 품거나 희망이 금새 오지 않는다 해서 버리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어쩌면 여러 차례의 기회라고 생각되는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즈음, 어쩌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즈음, 꺽인 허리를 펴고 기력없는 다리를 움직일 즈음 희망은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희망을 품는 게 아니라 희망이 나를 품어 일으키는 지도 모르겠다.

 

 

무겁게 매달린 귤들이 모두 떨어져도 절대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는 지인(人)의 소위 '부자 귤나무'. 앞에 싱그럽게 매달린 과실을 보면서도 먹지 않아야 하고, 바닥에 떨어져도 아까워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나름의 규칙은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모든 귤들이 떨어지고 버려진 후에 다시 열매 맺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1. RedFox 2010/02/27 23:40 답글수정삭제

    왜 안먹고 버리나요? 무슨 문화적인 배경이 있는건가요?

    • 행복한 자유인 2010/02/28 00:12 수정삭제

      글쎄요. 자세히 들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복(또는 재물운)을 가져다 주는 걸 사사로이 먹을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설명해 준 사람도 그 이상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었던 터라...

      개인적으로 이리저리 이유를 찾아봤지만 쉽지가 않더군요.^^;

    • RedFox 2010/02/28 06:11 수정삭제

      한국문화권에서 과실나무의 과일을 야박하게 모두 따내지 않고 '까치밥'을 남겨둬서 겨우내 새들이 쪼아먹게 내버려두는 '여유'를 보였던 것처럼

      중국문화권에서는 이 금귤나무의 열매를 그대로 건드리지도 않는 것으로 각박함속의 어떤 부유함, 여유로움을 추구했던 것 같군요...

      우리집 아이는 계란후라이를 밥에 얹어주면 그걸 밥을 다 먹도록 손도 안대고 안먹어요. 그래서 "후라이 싫어?" 하고 물으면 - 좋은거라 아끼는거라며 노리지 말라고 손으로 싹 가려요 남이 채갈까봐 하하하.

    • 행복한 자유인 2010/02/28 08:42 수정삭제

      '까치밥'의 느낌과 비슷하기도 한 것 같네요.

      귀여운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도 어릴 적에 그랬던 것 같아요. 맛있는 걸 맨 마지막에 먹는 것...

      그런 제게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줬죠. 맛있는 걸 먼저 먹지 않으면 나중에 배가 불러 먹지도 못할 뿐더러 배가 부르면 맛있는 것도 맛을 느끼지 못하니 맛있는 걸 먼저 먹으라구요.^^

  2. 깨미 2010/03/01 11:35 답글수정삭제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더 노래하는 오늘 우리,
    희망이 나를 불러세우는 날,

    그 날을 그려본다

    • 행복한 자유인 2010/03/01 20:21 수정삭제

      희망이 나를 불러 세우는 날.
      내가 희망을 불러 세우는 날.

      더디게 돌아왔지만 급하게 가지 않았으면.
      힘겹게 마주했지만 급하게 품어 안지 않았으면.

  3. 또 나야 2010/08/18 18:38 답글수정삭제

    유치한 단어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 않나... 싶다.
    그거 하나 바라보면서 삶이 버티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여기 어떤 가수가 부르는 노래 말 중에 " 열망은 기적이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더만, 이제는 그렇구나, 열망은 기적을 낳을 수 있는 원천을 제공하는 구나, 생각한다. 그 열망이 희망을 만들고, 그 노력이 기적을 낳는다라는 뻔만 말이면서도, 그것을 체감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절실하게 느낀다. 내 악어 또한 결국엔 희망인 것이고, 너가 중국에서 만날 악어 또한 네게 희망인 것을 말이야. 어쩌면 이미 만났을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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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in a frame | 2010/02/22 10:35 | 행복한 자유인

 

마음의 크기와 같다면,

품어 안을 수 있는 넓이와 같다면,

큰 일렁임 없이 고요할 수만 있다면,

오랜 세월을 여여하게 지켜낼 수만 있다면,

세상을 그대로 투영해 낼 수 있다면,

하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저 묵묵히 흘러갈 수만 있다면,

주변을 촉촉하게 적실 수만 있다면,

깊은 색깔을 가질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태그 : 호수
  1. 후박나무 2010/02/22 15:31 답글수정삭제

    하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저 묵묵히 흘러갈 수만 있다면..........
    특히 와닿는 구절이네욤(_ _)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 RedFox 2010/02/27 23:41 답글수정삭제

    호수 이름이 뭔가요? (뭐든지 이름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1인. :)

    • 행복한 자유인 2010/02/28 00:31 수정삭제

      남호(南湖)(면적이 7.6396제곱킬로미터)라고 하더군요. 이건 호수가 호수같지 않고 바다같은 느낌입니다. 근데 이보다 더 큰 호수-동호(东湖)가 또 있습니다.(면적이 30제곱킬로미터, 최고 깊이 4.66미터, 평균 깊이 2.48미터, 용적은 1억 입방미터):)

    • RedFox 2010/02/28 06:07 수정삭제

      절강성에 있는 남호인가요? 동호, 서호, 남호 이렇게 있지요? 항주에 서호가 있었던것 같은데. 서호는 본것 같아요... 거기가...대체적으로 물과 안개의 땅으로 기억되는데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거길 가봤었는데, 우와, 그게 벌써 10년전이구나... 그곳은 겨울에도 춥지가 않았어요 (제 기억에). 우와 근사한 곳에 계시는군요~

    • 행복한 자유인 2010/02/28 08:35 수정삭제

      아, 중국은 비슷한 이름의 호수가 너무 많아서..^^ 저도 항주에 가본 적은 있습니다만, 지금 제가 있는 곳은 호북성(湖北省) 우한(武汉)입니다. 절강성 항주와는 위도는 비슷한 것 같은데 좀 더 내륙쪽(서쪽)으로 들어와 있는 도시입니다.

      근사한 곳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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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의 감초, 증지위를 잘 아시지요? '첨밀밀'에서 미키마우스를 문신했던, 쓸쓸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그 배우 맞습니다. 증지위가 나오지 않는 영화가 없을 정도로 참 많이도 등장하죠. 일설에 의하면 증지위가 연예인들이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던 유덕화를 발굴해 낸 장본이라고도 합니다. 영화에서만 보던 증지위를 춘절(chūn jié;춘 지에-한국의 '설')에 마트에 갔더니 이렇게 활짝 웃으며 사탕을 권하고 있네요. 사실 한국의 연예인들의 상품광고에서 보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데도 괜히 기분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왼쪽에 노란 글씨로 크게 적혀져 있는 글은 新年糖(xīn nián táng;신 니옌 탕-새해 캔디?)이고 오른쪽 분홍 글씨로 적힌 글은 酥心糖(sū xīn táng;쑤 신 탕-브랜드 이름인 듯 합니다.)이네요.

 

새해엔 달콤한 사탕을 먹으면 더 행복해지려나요?^^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시고 그리고! 달콤해지세요. :)

 

한 가지 더,

 

중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집 안에 전구가 들어있는 복(福)자가 적혀진 빨간 종이 등을 밤새 걸어두기도 하구요. 현관문에는 春联(chūn lián;춘 리옌) 또는 对联(duì lián;뚜이 리옌)이라고 하는 종이를 좌우로 붙이고 가운데는 뒤집어진 복(福)자를 붙여두고 위에는 역시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글을 붙여두는데요. 이건 춘 리롄 혹은 뚜이 리옌은 한국에서 현관이나 문기둥에 '입춘대길', '만사형통'과 같은 글을 써서 붙여두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리고 위 사진과 같이 집 내부 곳곳에 그 해에 맞는 띠 동물로 된 그림들을 걸어둡니다. 올해는 호랑이 해인 만큼 집 안 곳곳에 호랑이들이 넘쳐나죠. 사진 속 호랑이는 분홍색을 띠고 있는 걸 보니 여자 호랑이네요. 그림은 모두 남/여성 한쌍으로 되어있습니다. 호랑이가 들고 있는 글자는 恭喜发财(gōng xǐ fā cái;꽁 씨 차이-돈 많이 버세요)이라고 적혀있네요.

 

중국에서 춘절에 서로서로 '꽁씨파차이'라고 말하면서 덕담을 건넵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춘절에 걸어 둔 그림들은 일년 내내 두었다가 새로운 해가 되면 내리고 다른 그림으로 교체해 걸곤 합니다.

 

중국의 춘절은 한국의 설보다 훨씬 더 북적거리는 것 같습니다. 하긴, 1년 동안 잘 모아둔 돈을 춘절에 다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중국의 경제 역시 춘절에 크게 들썩거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춘절에 쉬는 날이 한국의 두 배 정도 되는 게 가장 부럽습니다.-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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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in a frame | 2010/02/13 02:17 | 행복한 자유인

 

매번 명절이 되면 물건은 넘치고 넘치는 상품 속에 사람들이 넘실댄다.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것 같이 쌓인 상품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닿는 곳 없고

욕심사이에서 방황하다 지쳐 눈을 감으면 욕심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많은 자본의 토악질 속에서 허우적대다 끝내 숨을 거두는 인간의 삶이

당장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잠시 호흡을 멈춰 먼 발걸음을 두고 바라보면

내 몸에 휘감기고 내 마음에 들어앉은 현대의 삶이 꼭 어울리는 옷만이 아니었음을 알 때도 있다.

  1. 써머즈 2010/02/13 19:17 답글수정삭제

    필요한 것만 잘 사고,

    명절 잘 보내. :)

    • 행복한 자유인 2010/02/13 21:55 수정삭제

      난 살 것도 없고 별로 사지도 않아.^^

      너도 명절 잘 보내라!
      경인년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아라.
      원하는 일들 순조롭게 잘 이뤄지길 기원한다.

      힘껏 살아내자!

  2. shyjune 2010/02/16 01:50 답글수정삭제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쓰레기 더미 위에서 쓰레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행복한 자유인 2010/02/17 01:19 수정삭제

      Shyjune님이 남겨주신 글을 보며 "필요"와 "불필요"의 간극을 가늠해 봅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방황하는 "욕망"이란 허울을 들여다 봅니다. 인간의 진화와 물질문명의 발달은 옳은 것이었을까요? 인간이란 존재는 참 오묘하네요.

  3. 그별 2010/02/20 23:16 답글수정삭제

    명절 잘 보내시라는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글을 남깁니다.

    잘지내셨죠? ^^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유인님... (_ _)
    예전에 자유인이라는 별칭을 사용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알길 없는...

    그 친구 못지 않게 행복한 자유인님의 글들은
    저를 매료시키는 힘을 지니고 계십니다. ^^;

    • 행복한 자유인 2010/02/21 00:19 수정삭제

      저 또한 인사드리지도 못했는 걸요.
      사람냄새가 난다는 덕담 고맙습니다.

      그별님,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시길...
      그리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염원합니다.

      요즘은 자주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없어
      가끔이지만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겁 없이) 자유인이란 별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어째 갈수록 더 자유스럽지 못한 것 같네요.^^;
      '행복한'이란 말은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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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품추첨의 규모는?

china;chinese | 2010/02/13 01:55 | 행복한 자유인

 

중국은 면적도 넓고 사람도 많다고 하잖아요?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 한 장 소개합니다. 중국에 장춘에 있는 欧亚;Ou Ya-오야 마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春节;Chun Jie-춘지에(설)를 맞이하여 경품추첨행사를 한다는 플랭카드입니다. 위에서 두 번째 줄에 5000이라고 숫자가 보이시죠? 그 줄에 있는 글의 내용을 보면 추첨을 통해 5000명에게 茅台;Mao Tai-마오타이 술을 증정한다고 하네요. 세 번째 줄은 IMAX 3D영화 티켓 10000장과 생활용품 50만 개를 선물로 준비했다고 하네요. 물론 복권방식 등의 추첨을 통해서 주는 것이겠죠.

 

규모가 엄청나죠? 물건을 산 영수증 대로 기회가 주어진다니 매일매일 가서 쇼핑을 하면 그만큼 확률도 높아져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상품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품이 1인당 1개씩이라면 51만 5천 명(515,000)에게 줄 상품을 준비했다는 것이죠. 장춘시 인구는 대략 3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장춘시 인구의 6분의 1에게 줄 상품을 준비했다는 거네요. 놀랍지 않나요?

 

물론 행사를 진행하는 欧亚;Ou Ya-오야 마트의 규모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지만 한국과 규모를 비교해보니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사실 저런 내용을 보면 놀랍기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플랭카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服饰类/钟表珠宝类/化妆品类/床品类/超市类/电器类/儿童商场

    5000瓶茅台酒滚动大抽奖发卷、投卷地点,

    10000张IMAX 3D影票 50万件适用礼品刮大奖活动地点、

    已迁至2F儿童世界旁

 

★ 5000瓶茅台酒滚动大抽奖现场、领奖地点

    已迁至-1F大西洋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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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품추천이란 말은 抽奖 [chōu jiǎng]이라고 하며 한글음독은 [초우 지앙]입니다.

중국술 마오타이주는 茅台酒 [máo tái jiǔ]라고 하며 한글음독은 [마오 타이 지우]입니다.

설이란 뜻의 춘절은 春节 [chūn jié]라고 하며 한글음독은 [춘 지에]입니다.

 

춘절에 서로 하는 인사말은 "过年好"입니다. 过年 [guò nián;꾸어 니엔]은 설을 쇠다. 새해를 맞다라는 뜻이고 好 [hǎo;하오]는 좋다는 뜻이니 "새해 잘 보내세요", "명절 잘 보내세요"라는 뜻이 되겠죠. 그러니 설을 맞이해서 이렇게 인사하면 됩니다.

 

"꾸어 니엔 하오;过年好" :)

  1. 써머즈 2010/02/13 19:15 답글수정삭제

    헉; 경품에 당첨되지 않으면 기분 나쁠 규모...지만 중복 당첨자가 꽤 많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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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이 사라진 세상의 무식한 대학생

record my mind | 2010/02/13 01:16 | 행복한 자유인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via 일상다반사 by 후박나무

 

글을 읽다 몇 가지 기억이 떠올라 적는다.

 

내가 다니던 대학 앞에는 소위 '대학로'라는 게 있었다. 크지 않은 도시였기에 젊은 대학생들은 대학로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대학 근처에 가면 크고 작은 서점이 곳곳에 있었고 전통 주점과 당구장,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다방 그리고 비교적 촌티나는 상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시대가 급변했고 대학로 역시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당구장은 PC방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가격을 점점 인하하더니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속칭 비디오 다방(커피숍)은 최신 시설을 구비한 비디오방으로 변해갔다. 촌티나는 상점들은 인테리어에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자리를 잡아갔고 전통주점은 '인동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가끔 들렸던 서점이 점차 눈에 띄지 않더니 어느샌가 시험준비를 위한 서점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었다.

 

즈음, 마지막까지 남아서 인문학 서적을 팔던 서점이 한 군데 있었는데 서점 주인아저씨(기억으로는 형님뻘)는 소아마비였다. 한쪽 다리가 유난히 가늘었던 데다가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 기억이 선하다. 약간은 차갑지만 온화한 기운이 흐르던 주인아저씨는 어느 날 서점을 찾았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건 말건 관심없는 듯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묶고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어? 서점 이제 안 해요?"라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다른 날과는 다른 좀 더 엄숙하고 조금은 침통한 표정으로 "네"라고 짧게 답했다. "어.. 여기가 대학로에서 마지막 남은 서점인데... 이제 어디에서 책을 사야 하나..."라고 주인아저씨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는데 때 난 씁쓸하게 가느다란 웃음을 짓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보았다. 난 쓸쓸하고 슬픔이 막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주인아저씨의 표정과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서점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던 날 부터 대학로는 급속히 유흥가로 변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학 교정(캠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없었고 어느 누구도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같다. 내 기억 속에서 소위 '지성의 대학로'는 어느 짧은 시간동안 '무식한 대학로'로 부끄러움 하나도 없이 완벽하게 얼굴을 바꿔버렸다.

 

그때의 난 (지금도 그렇지만) 철이 없었고 사리분별이 명확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서점이 자취를 감췄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로'에서 서점이 사라지다니 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까. 서점이 사라진 후의 대학로는 돈을 쓰는 자와 돈을 버는 자 두 부류만 남아 서로 물고 뜯는 일만 가득해지게 되었다.

 

오색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대학로의 밤거리는 나름대로 꽤 운치가 있다. 하지만 날이 밝고 아침이 되면 (좀 과장을 하자면) 정신 못차리는 술취한 대학생들과 그들의 틈에 어지럽게 방황하는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누가 대학로를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니 각자 살길을 찾아,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구호가 (지금도 큰 이슈인) '등록금 인하'의 구호로 바뀔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사상과 철학, 이념의 목적이 뚜렷했던 세대가 무언가를 손에 얻어 쥐게 된 후엔 누구도 그 이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었고 마치 방향잃은 부표처럼 흥청거리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4.3 추모집회'를 하던 '5.18 추모집회'를 하던 이젠 철지난 이슈와 이념으로 치부하며 함께 어깨걸기를 꺼려했고 대신에 '돈'을 들여 몸치장을 하고 '돈'을 쓰며 몸에 알코올을 붓고 사랑을 나누고 젊음을 탕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방향잃은 부표, 386세대들은 지금 정치를,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을 텐데 그들이 원하던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는 문열이만 하고서 모두 함께 '먹고 사는' 문제로 가열차게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가지 이유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학로에 서점은 사라지고 책은 잃지 않는 대학생만 넘쳐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홍세화씨가 말한 '무식한 대학생'이란 말은 옳다. 하지만 대학생만 무식한 게 아니다. (물론 나를 포함해) 수 많은 성인(成人)들이 무식하다.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고 있다고 해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수 많은 고전들을 읽었다고 해서 유식한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성인들은 무식하다.

 

하지만 홍세화씨가 대학생을 지칭해 무식하다며 깨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엔 충분히 공감한다. 근래에 개인적으로 내린 작은 결론, 세상의 수 많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학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꼭 학벌에 속하는 '대학생'만을 지칭하는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중 열에 아홉은 대학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니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홍세화씨의 외침에, 질문에 반응을 보일 대학생들이 많은가라고 반문해보면 개인적으론 무척 비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역시 대학생이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줌은 있다는 것이다.

 

홍세화씨의 글을 읽으며 나의 '무식'을 비수로 찌르는 듯 해서 아프고 비참했다. 무식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의 유식은 금새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라 스스로가 무식하지 않다고 항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빨리 유식해지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의 무식함을 절절히 곱씹어보고자 기억의 편린들과 몇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기록한다. 적어도 스스로 유식하다며 '자존자대'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 링크 걸린 글 내용 중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당한 것이다'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소신지원해서 간 대학'이 사실은 '대학들의 (줄세우기로 인한) 비열한 선택의 결과'임을 인정한다면 이 나라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괴한 시스템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대학생들이 '무식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1. 온라인서점 알라딘의 TV광고

    Tracked from Bookstore Laboratory (책방연구소) 2010/02/21 14:36

    온라인서점 '알라딘'이 TV 광고를 촬영하고 방송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업계 4위권을 달리고 있지만, 알라딘은 TTB(Thanks To Blogger)등 업계에선 늘 한발 앞선 아이템과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점의 TV광고는 국내 최초가 아닌가 싶다. 모델로 '배두나' 씨를 섭외했는데, 최근에 '공부의 신' 출연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데다 책도 몇 권을 쓴 작가의 모습도 가지고 있다. 항상 꾸밈없는 편한 모습의 4차원 소년같은 그녀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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